이제 '호구'는 그만: 죄책감 없이 나를 지키는 거절의 기술

 원치 않는 물건을 손에 쥔 채 씁쓸하게 매장을 나선 경험, 거절하지 못한 부탁 때문에 밤새 뒤척인 경험. 우리에겐 이런 후회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분명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그 순간. 우리는 왜 거절 앞에서 작아질까요?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거절을 ‘공격’이나 ‘관계의 단절’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착한 마음이, 오히려 나 자신을 갉아먹는 ‘죄책감’이라는 족쇄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을 납득시키기 위한 ‘그럴듯한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고, 그 과정에서 대화의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주게 됩니다.

하지만 건강한 인간관계는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상호 존중 위에 세워집니다. 나를 지키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건강한 경계를 설정하는 첫걸음입니다. 오늘은 마누엘 스미스의 명저 <죄책감 없이 거절하는 용기>의 통찰을 바탕으로, 더 이상 눈치 보거나 끌려다니지 않고 당당하게 나를 지키는 ‘거절의 심리학’ 3단계를 소개합니다.


죄책감 없이 나를 지키는 거절의 기술



1단계: 변명은 이제 그만, ‘그냥’이라는 마법의 단어


거절을 못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바로 ‘변명’을 찾는 것입니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요”,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요”와 같은 이유는 상대방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질 빌미를 제공합니다. “그럼 카드로 하시면 되죠”, “그럼 내일은 시간 괜찮으세요?”라는 반격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유 대기’의 함정입니다. 당신이 이유를 설명하는 순간, 그 이유의 타당성을 판단할 권리는 상대에게 넘어갑니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당신의 ‘선택’에 구차한 이유를 덧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의 감정과 생각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제 취향이 아니네요.”
“관심 없습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어렵다면, ‘그냥’이라는 마법의 단어를 사용해 보세요.

“음… 그냥 끌리지 않네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제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이라는 말은 상대방의 추가 질문을 차단하는 부드럽지만 강력한 방어막이 되어 줍니다. 이는 당신의 결정이 외부 조건이 아닌, 온전히 당신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임을 명확히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례하게 들리지 않도록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요”와 같은 완충 어구를 함께 사용하는 센스도 필요합니다.

핵심은 당신의 거절에 대해 상대방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2단계: 실수는 과정일 뿐, 비난을 성장의 발판으로


우리는 실수를 했을 때 종종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느낍니다. 특히 누군가 나의 실수를 지적하면, 그 비난이 마치 나라는 사람 전체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져 극심한 방어기제를 발동시킵니다. 변명하거나, 상대를 역으로 공격하거나, 혹은 과도한 죄책감에 빠져 상대의 무리한 요구까지 들어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반응의 뿌리에는 ‘나는 완벽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믿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이제 관점을 바꿔봅시다. 실수는 실패의 낙인이 아니라, ‘성장의 증거’입니다. 실수를 했다는 것은, 적어도 당신이 무언가를 시도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실수를 마주했을 때 이렇게 반응합니다.

“아, 제가 그 부분을 놓쳤네요.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제 실수가 맞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실수를 회피하거나 변명하는 대신 담담하게 인정하고,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당신을 더욱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합니다. 물론, 당신의 실수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있는 행동은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기억하세요. 실수를 빌미로 당신을 통제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는 신호입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3단계: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건강한 이기주의’의 힘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 봐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미움받을까 두려워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 우리는 이것을 ‘배려’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나의 안녕과 행복을 대가로 치르는 배려는 결코 미덕이 될 수 없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건강한 이기주의(Healthy Selfishness)’의 필요성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와는 다릅니다. 나의 욕구와 감정도 타인의 것만큼 중요하며, 스스로를 먼저 돌볼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스스로 다뤄야 할 감정의 영역입니다. 당신이 할 일은 무례하지 않게, 하지만 단호하게 당신의 경계를 설정하고 지키는 것뿐입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욕심을 버리세요. 당신이 모든 부탁을 들어주는 ‘예스맨’이 될 때, 사람들은 당신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할 것입니다. 반면, 당신이 자신의 원칙 안에서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사람들은 당신의 ‘수락’을 더욱 가치 있게 여길 것입니다.

나를 지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타인에게도 건강한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당신의 삶에 ‘건강한 이기주의’를 조금 더 허락해 주세요.